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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직원들의 ‘부자의식’ 조사… 그 돈을 벌 수 있는가, 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돈을 얼마나 가져야 부자일까? 부자를 한마디로 짤막하게 표현한다면? 부자라고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생애동안 벌 수 있다고 보는가?

이 세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제각각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불가능'이란 답이 많겠지만.

부자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번 던져봄직하다.

당장 계산기를 꺼내 월급과 부동산, 주식 등을 꼼꼼히 살펴가며 내가 평생동안 얼마나 벌 수 있는지 따져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계산기를 놓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 10억원 가지고는 부자라 못한다? >

「아이들 결혼시키고 두 부부가 나름대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돈, 게다가 가족과 함께 여름철 하와이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는 돈, 그 돈은 얼마나 있어야 되는 것일까?」


모 신문사에서는 한국은행 직원들을 상대로 '한국인의 부자의식'을 알아봤다.

굳이 한국은행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건 다니는 직장이 직장인만큼 좀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돈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응답자는 총 91명(남자 89명)이었다. 나이별로는 40대가 가장 많은 63명이었고 30대 22명, 50대 4명, 20대 2명이었다.

우선 "당신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근로소득에다가 금융 및 부동산 자산 등 모든 재산을 포함)에 대해 91명이 제시한 평균은 27억2967만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60억원 이상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8명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다른 응답자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제시해 편향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을 뺀 83명만을 대상으로 다시 따져봤다.

그 결과 한국은행 직원들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평균재산이 20억7710만원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20억7천여 만원은 어떤 근거에서 나왔을까?

한국은행의 한 직원은 "10억 원이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아내와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즐길 수 있겠지만 부자라 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회사에서 잘려나가도 10억원 이상을 갖고 있으면 은행에 넣어두고 다른 돈벌이가 없어도 이자소득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금리도 크게 떨어졌고 20억 원은 있어야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김아무개씨도 "부동산 5억에다 금융자산 5억으로 총 10억원 정도면 아이들 결혼시키고 두 부부가 나름대로 여유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돈"이라며 "하지만 가족과 함께 여름철 하와이 여행이라도 다녀올 여유가 있으려면 20억 원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자의 평균 기준이 20억7천만 원으로 나온데서 보이듯 응답자 91명 가운데 부자의 기준으로 20억 원을 꼽은 사람이 28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0억원이 23명, 30억원 11명, 50억원 9명이었다. 100억 원이라고 답한 사람도 7명에 달했고, 반면 10억 원 미만을 가져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람은 8명에 불과했다.



< 10억? 돈벼락 맞지 않는 한… >

삼성증권이 홈페이지인 삼성 에프엔닷컴을 통해 ‘부자의 기준’을 조사한 결과도 한국은행 조사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 조사 결과 설문 참여자 4649명 가운데 1998명(42%)이 부자의 기준으로 10억∼50억원을 들었다.

이 역시 현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을 모두 포함한 총재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삼성증권의 조사에서 부자를 50억 원 이상을 소유한 재력가로 본 사람은 22%, 5억∼10억원은 19%, 5억원이하 4%, 그리고 기타 10%였다.

물론 “20억원 정도를 가지고 ‘부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대대로 재산을 대물림하는 세습 갑부를 부자라고 본다면 20억원 정도를 가진 재력가는 부자 축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부자는 재벌이나 만석꾼 같은 전통적인 의미의 부자가 아니다. 설문조사 결과는 대다수 일반 시민이라 할 수 있는 소시민의 눈에 비친 부자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뒤를 잇는 궁금증은 그렇다면 그 돈을 벌 수 있는가 여부다. 다소 놀랄지 모르지만 한국은행 직원 가운데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평생에 걸쳐 모을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30명이었다.

“그렇게 많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가 벌어들이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부동산, 증권 등으로 버는 소득에다가 상속, 증여를 받을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번에는 30명한테 부자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물어봤다.

대답은 주로 10∼15년이었다. ‘앞으로 10년 뒤에 그만큼 벌 수 있다’가 12명, 15년이 10명, 20년 5명, 그리고 5년, 7년, 25년이 각각 1명씩이었다.

덧붙여 설문조사에 응한 91명 가운데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총액을 알아보니 2억원 이하가 35명, 3억원대가 20명, 4억원대 12명, 5억원대 14명 그리고 6억원대 이상이 9명이었다.

물론 순전히 일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현재 가족 재산이 1억 원이라 는 39살의 한 직원은 “10억원을 모으는 데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갑작스럽게 돈벼락을 맞지 않는 한 이룰 수 없는 꿈에 가깝다는 얘기다.


물론 인터넷, 벤처, 코스닥 열풍 등으로 청년 재벌같은 신흥 부자가 새로 부자 대열에 끼어 들면서 한국사회 부자의 지형이 조금씩 바뀌고 있기는 하다.

부를 물려받는 세습부자 외에 이른바 ‘뉴 리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길은 여전히 비좁다.

특히 노동을 통해 부자가 되는 길은 더욱 허망하기만 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핍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서 부자 되기란 그야말로 꿈으로 그칠 공산이 큰 것이다.

주식으로 떼돈을 벌 수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주식투자 해서 큰돈 만진 월급쟁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부자 욕망을 좇다 어느 날 “여러분, 나 거지됐어요”로 한순간에 떨어지고 마는 봉급생활자가 훨씬 많은 게 현실 이다.



< 20억 생기면 자녀교육 투자... 14명이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당장 내 손에 20억원이 쥐어진다면 지금과 다른 어떤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당장 부자의 꿈을 이룬다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것 3가지를 꼽으라'는 질문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해외 여행(67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이 ‘강남에 집을 사거나 별장, 전원주택을 구입하는 등 집을 옮기겠다’(47명), ‘사회봉사나 기부를 하겠다’(30명), ‘골프 등 레저생활을 즐기겠다’(22명), ‘좋은 차나 텔레비전 등을 사겠다’(21명)는 순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점은 ‘자녀 교육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대답이 14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직원 최아무개씨는 “예전에는 10억원이면 부자라 할 수 있었겠지만 아이들 교육시키는 데 들어가는 돈이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20억원은 가져야 부자로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과외를 시키지 않으면 출세길이 막히고, 거기에 대해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씁쓸한 풍경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부자를 한마디로 짤막하게 표현한다면?' 이라는 질문에서는 예상대로 다양한 대답이 쏟아졌다.

대체적으로 간추리면 부자는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즐기며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부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정리됐다. 또 ‘돈 걱정에서 벗어난’ ‘여유 있는 삶의 향유’외에 부자의 특권으로 꼽은 건 달리 없었다.

돈 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수준에 대해 “1억원을 보증 섰다 떼여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곧 부자” 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부자에 대해 “베풀 줄 아는 사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정당한 방법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 등 부의 정당성과 부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응답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것’으로 벌어들인 돈 중 일부를 불우이웃을 돕는 등 사회봉사에 쓰겠다는 응답이 30명에 달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 돈이 주는 ‘인격적 능력’의 행복감 >

“인색하게 구두쇠로 큰돈을 모은 사람은 결국 수억 원을 줘도 못 고치는 몹쓸 병에 걸린다”는 악담같은 게 두려 웠던 것일까? 아니면 복권이 맞아 떨어지듯 길이 터지고 그린벨트가 풀리면서 또는 증권으로 재미를 봐서 말 그대로 갑자기 졸부(猝富)가 생겼다는,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부자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부자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이므로 한국에서 부자는 이기적인 기회주의와 탈세 등 부패구조가 만들어내는 돌연변이”라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피땀 흘려 일해서 큰돈을 번 사람이 아니라면 진정한 부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의 설문조사에서 한 참여자는 “부자는 돈의 과다에 상관없이 항상 넉넉할 수 있지만 졸부는 억만금이 있어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라며 주체할 수 없는 정도의 돈을 번 졸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비뚤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른바 ‘당당해진 부자의 꿈’이라고 할 만하다. 평균 20억원의 재력은 부를 대물림하는 진짜 부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족이 살아가는 데서 나름대로(!)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의 돈이란 의미에서 20억원은 '사회적 동의'를 갖춘 소시민적인 부자의 개념에 부합한다.


부자 또는 돈에 대한 이런 가치관 변화는 어떤 의미를 안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돈질 한다”거나 “돈 냄새 난다”는 표현이 그렇듯 돈을 밝히는 것을 향기롭지 못할 뿐 아니라 천박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대신 “욕심과 마음을 비워라”는 말이 항상 뒤따랐다. 그런데 ‘부귀영화’라는 말에서 보이듯 돈에는 ‘귀한 것 '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다.

돈은 누구에게나 다 가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 간다는 얘기다.

소수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고 이른바 ‘귀하신 몸’한테만 특권처럼 붙은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한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남들이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부는 인격과 능력을 보장해준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며 “한국인에게 돈이 주는 가장 큰 행복감은 돈이 주는 인격과 능력을, 즉 남이 부러워하는 것을 내가 갖고 있다는 확인에서 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증권사에 큰돈을 맡기는 사람한테 “귀하의 명예를 모십니다”고 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의 1%만 타는 차”라고 광고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라는 얘기다.



< 이제 당신에게 물어볼 차례 >

당신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벌었다면 계속 직장을 다닐 것인가?

따로 물어본 건 아니지만 ‘부자가 되면 하고싶은 일’을 물어본 대목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12명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직장을 그만두겠다’(6명), ‘자기사업을 하겠다’(2명), ‘유학가겠다’(4명)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한 직원은 “20억원을 벌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과 돈은 별개의 것이고, 일하는 재미가 또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얼마를 가져야 나는 부자일까? 자, 이제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 계산기를 꺼내 두드려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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