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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부자

제목 그 분의 무임 승차 노하우
이름 강영선 등록일 04-12


강영선 LG투신운용 상품개발팀 과장은 투신업계 1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간접투자와 펀드 등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머니투데이 홈페이지 재테크 섹션 <맛있는 펀드>에 쓰고 있습니다.
신입 사원 시절, 오후 4시30분만 되면 매일 지점으로 오시는 돈이 없어 보이는(?) 고객이 있었다. 매일 나와 차도 마시고 담당 책임자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때우다 가는 것처럼 보였다.

왜 매일 나오실까 궁금하던 차에 그분을 담당하는 선배 책임자에게 물었는데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꽤 큰 돈을 투자했는데 무임승차가 목적이었다. 당시 펀드는 입출금 거래를 당일 오전에 발표되는 기준가격으로 했다. 그 분은 이런 제도를 교묘히(?) 이용했다.

즉, 오늘 주가가 오르면 내일의 기준가격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마감한(당시 3시 30분 장 마감)이후 객장에 나와서 주식편입비가 높고 우량종목으로 구성된 펀드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 이였다. 그러면 다음날 이익을 얻으므로 당장 환매해 수수료를 공제하더라도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회사와 다른 투자자의 이익을 갉아먹는 아주 불건전한 거래였는데도 당시 거래 관행이 오후 5시까지는 입출금이 됐고 펀드의 약관이 당일 입출금이 허용됐기에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당한 거래로 회사도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였다.

이 분은 그런데도 한 술 더 떴다. 자신의 돈을 한곳에 예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투자하면서 거래를 안 해주면 곧바로 돈을 빼서 다른 투신사로 가 버렸다. 돈을 무기로 삼았던 셈이다.

그 뒤 책임자는 그 고객이 나타나면 슬슬 도망을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98년 9월부터는 주식형 펀드의 경우 다음날 기준가격으로 매입이 되고 환매도 3영업일 기준가격으로 환매를 하게돼 이런 해프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싸이월드 다음은 바로 나
장기투자하면 수수료 번다
송승헌, 잠적부터 심경고백까지
외평채 가산금리 85bp "성공?"



이처럼 MMF를 제외한 펀드가 거래에 있어서 Blind 방식(거래 기준가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하는 방법, 즉 매입 시 다음날 기준가격으로 하고 환매시 제3영업일 기준가격으로 거래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펀드의 이해득실이 정보를 먼저 알고 있는 사람에게로 전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작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뮤추얼펀드 사태도 이런 것이었다. 뮤추얼펀드 운용에 관계된 사람들은 펀드의 기준가격을 남들보다 먼저 알게 되므로 이를 이용해 부당한 거래를 한 것이다. 결과는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의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고 해당 뮤추얼펀드 이사들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재 채권형 펀드의 경우 입금시 당일 기준가격으로 거래를 한다. 이 제도도 새로운 법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펀드는 다음날 기준가격으로 거래를 하게 되지만 기존 펀드의 경우 무위험 수익을 조금 얻고자 한다면 금리가 엄청나게 빠진 날 가입하면 된다. 그리고 금리 오른 날은 가입시점을 다음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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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 후반 아주머니

98년 입사 후 난 소위 억대의 금융자산을 소유한 한 전직 공무원출신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특징은 이러했다

첫째, 통장에는 깨알같이 사용내역이 적혀 있었고

둘째, 예금금리 0.1%의 차이를 세금공제 후 수령금액을 원단위까지 꿰고 있었다

셋째, 관내 타행의 수신금리를 나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넷째, 텔러들을 몹시 괴롭혔다

"사은품은 나오지 않느냐? 금리가 어떻게 될 것 같냐? 신문을 보니까 이러하던데?...."

급여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마음은 부자가 아닌 듯 했다



○ 멋있는 40대 터프가이

입사 2년차 외환거래를 통해 그가 폐차장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품을 중동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특징은 이러했다

첫째, 과하리 만큼 부하직원을 끔직히 챙겼다. 하지만 충성을 요구했다. 배신은 용서치 않았다

둘째, 성격은 사교적이라 대부계직원과 항상 절친한 사이로 지냈으며, 솔직했다

셋째, 사업장에서는 사장과 직원의 구별이 되지 않았으며, 항상 햇볕에 그을린 채로 영업점을 찾았다



그는 근면, 성실한 자세로 생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주위를 늘 돌보았다

그는 예금 만큼 부채를 가지고 있었고 순자산 10억대 부자는 아니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선 다소 주변을 살펴야 하지만, 큰부자는 다소 검소함이 필수조건이라

생각했다



○ 교사출신의 50대 사장님

입사 4년차 대출을 담당하면서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인천에서... 그는 서울의 모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박봉에 못 견뎌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아니 부동산으로 부를 축척하고 있었다



지하상가 음식점, 통신대리점 등등 지금은 50억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모처에 알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첫째, 부동산은 사고파는게 아닙니다. 사면 10년이 지나면 은행이자 내고도 배는 올라있는데 은행에 감사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둘째, 땡빚을 내서라도 요지에 가게를 차려야 합니다

셋째, cash-cow 만들어 놓으세요 . 상가에서 나오는 세로 은행이자 내고, 세월이 흐르면 평당2~3배는 올라있을 테니까요



나는 느꼈다

첫째, 그가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인천에서 대구의 지하상가 분양을 받았다고 했다..허걱

둘째, 그는 토지가 공공재라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고 그에게는 끊임없는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 했다

셋째, 끊임없는 관심과 정보수집을 위한 노력에 감탄했다. 지금도 땅을 찾아 헤메고 있다

넷째, 그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땅을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한 수 있었던 것이라 했다



그는 아직도 대출을 좀 더 해줄 수 없느냐, 금리를 낮추어 줄 수 없냐고 지출을 줄여가고 있다



○ 30대 사업가

작년에 만난 그는 가구제조공장을 소유한 젊은 사업가였다

IMF를 지나 2001년 무렵에 공장부지 매입을 위한 대출을 하면서 그가 부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싱크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어느날 달리는 차를 바라보며, "저렇게 빨리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이라는 의문이 뇌리를 스치면서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의 특징은 이러했다.



첫째, 신용으로 사업을 했다. 현금으로 승부했다

둘째, 항상 아꼈다. 그가 소주사는 날이면 어느날 보다 많이 마셨다. 안주 역시..

셋째, 모르는 것은 항상 물어보고 공부를 했다

넷째, 항상 회사의 일로 고민했다

그리고, 고유의 기술력을 가질려고 노력했고, 시스템의 효율을 제고했다



나는 그를 보며 제조업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다

근로자 100명에 딸린 식구가 최소 5명이며, 500명이 그 회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는 돈을 쫓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땅을 보는 안목은 탁월했다. 인천의 공장부지는 수요초과상태였고 그가 매입한 공장부지는 2배가 오른 상태다.



교사출신의 50대 사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하세요. 전세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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