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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불삼세(富不三世)`라고 하지요.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2대, 300년에 걸쳐 만석꾼 (1년 쌀 수확
량이 만석인 대단한 부자)을 지낸 집안이 있습니다.
바로 `경주 최부자집`입니다.
경주에 가보셨습니까?
첨성대 주변에 계림숲이라고 있는데, 계림 숲 뒷편에 바로 최부자집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였던 경주 최부자 집은 16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만석꾼의 부를 유지했습니다.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자그만치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으면서 살았을까요?
바로 최씨 집안에는 대대로 철칙으로 지켜져 내려오는 가훈이 있었습니다.

최부자집 첫째 가훈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
지 말 것`

조선시대에 진사시험 합격은 양반신분증의 획득과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최 부자집에서는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이었습니다.
벼슬을 하면 욕심의 끝이 없어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고, 결국에는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되어 온 가족이 화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래서 최부자집은 돈만 잡고 권력은 처음부터 포기를 했습니다.
선택과 집중, 이른바 정경분리(政經分離)를 실천한 것입니다.

둘째 -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부자일수록 재물에 더 탐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최부자집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을 알았습니다.
1년 소작료 수입은 만석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상은 내 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만석 이상의 재산은 소작료 할인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을 했습니다.
다른 부자집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부자는 40%에서 멈추고 ··· 소작료가 저렴하니까, 경주 일대의 소작농들은 최부자 집 농사를 짓기 위해서 앞다퉈 줄을 섰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팠지만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박수를 쳤다고 하는군요.

셋째 -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 것`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 천명씩 굶어 죽는 시대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는 논과 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 팔았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니까요.
너무 굶주려 `흰죽 한 그릇 얻어먹고` 내 놓은 논과 밭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흉년이야말로 없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최 부자 집은 이런 논과 밭을 결코 사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가진 사람이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었죠.

넷째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최부자집을 찾는 어떤 사람이라도 극진히 대접하고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최부자집 사랑채는 1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였고,
1년에 약 1천석의 쌀을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별도의 뒤주를 둬 누구든지 쌀을 가져가 다음 목적지까지 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답니다.
단, 입구를 좁게 해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양의 쌀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했다는군요.
이렇게 함으로써 최부자집의 인심은 널리 알려졌으며, 민란 등 사회적 혼란기에도 폭도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 부자집에서 1년에 소비하는 쌀의 양은 대략 3천석 정도였습니다. 그 가운데 1천석은 식구들 양식으로 사용하고, 그 다음 1천석은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나머지 1천석은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보릿고개가 닥치면 한 달에 100석의 쌀을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주변이 굶어죽는데 나 혼자 만석꾼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부자 양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섯째 -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의 절약정신을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집오면 3년간 무명옷만 입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절약정신을 강조한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빌게이츠를 가진 자의 의무를 다 하는 사람으로 비유를 합니다만 우리나라에도 경주 최부자와 같은 참다운 부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입니다.
`가진자의 의무`이지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도 부자가 되시고, 꼭 경주 최부자와 같은 멋진 인생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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