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우희재(wooridl@bcline.com) 마이아 대표이사

국내 최초 ‘바젤Ⅱ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 개발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 직원 신분증을 내던지고 IT업체에 발을 들여놓은 지 12년째인 우희재(38) 마이아 대표이사에겐 이제 겨우 앞이 보인다. 컴퓨터 조립, 쇼핑몰 운영, 은행과 증권․카드회사의 각종 리스크 관련 시스템 개발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던 그가 최근 은행권의 살생부로 불리는 BIS(국제결재은행) 비율을 산출해 내는 ‘바젤Ⅱ 위험가중자산(Risk Weight Asset) 산출 엔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한정곤 기자 allen@chosun.com

BIS 비율은 은행권에서 살생부로 통한다. 은행의 존속과 퇴출을 결정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은행들이 BIS 비율을 충족시키지 못해 퇴출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최근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논란의 핵심에도 BIS 비율 조작 여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88년 확정된 현재의 BIS 비율만으로는 은행이 직면한 다양한 위험을 적절히 측정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라 스위스 바젤위원회는 지난 2004년 6월 새로운 자기자본제도인 신 BIS 협약을 도입했다. 일명 ‘바젤Ⅱ’로 불리는 협약이다. 기존의 BIS 협약보다 평가기준이 훨씬 세분되고, 금융감독 당국, 주주나 투자자 같은 시장의 감독 기능도 추가됐다. 따라서 은행의 리스크 관리 선진화와 자본 충실화를 유도하기 위한 종합적인 자본규제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당초 우리나라는 2008년 1월부터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국내 은행들의 준비가 미흡해 최근 1년 뒤인 2009년 1월로 연기했다. 다만 신 BIS 협약 중 고급법을 제외한 표준 방법과 기본법은 예정대로 2008년 1월부터 시행하되 은행의 준비 현황 등을 고려해 2008년 중에는 현행 기준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지난 2004년부터 바젤Ⅱ 도입에 따른 리스크 관리 시스템 도입에 한창이다.

은행이 최소한 보유해야 하는 BIS 비율을 산출하는 데는 우 대표가 개발한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이 사용된다. 은행의 위험이 고려된 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하는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은 전무했다. 10여 개 외국계 회사가 아무런 견제도 없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프랑스 제품인 페르마(Fermat)와 미국 제품인 쌔스(SAS)를 사용하고 있어 이들 두 개 제품이 사실상 시장을 점유해 왔다.

우 대표가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 2003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종합사후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은행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우 대표는 비로소 BIS 비율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금융권에서 일을 하다 보니 BIS 자기자본산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BIS를 산출하는 국산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특히 몇 십억원씩 국부를 유출해 가며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외국산 소프트웨어마저도 국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패키지 비용에 컨설팅, 유지 보수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은행들이 우 대표는 안타깝기만 했다.

그로부터 개발과 시험운영을 거쳐 지난 1월 모 은행에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꼭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모든 개발업무가 그렇듯이 재정적 지원이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무용품 하나 구입하는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형 은행 업무에 연계돼야 한다는 제품의 특성상 동일한 환경을 구축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의 고통은 차라리 호사스러운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완료되고 시험운영까지 마쳤지만 성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 대형 은행들과 소위 힘 있는 기관에서는 우 대표의 바젤Ⅱ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설령 인정은 하더라도 도입까지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부정 비리가 개입돼야 한다는 것도 우 대표를 좌절케 했다.

“지난 1월에야 일단 물꼬를 텄습니다. 국산 제품이라는 이유와 이해관계를 따지는 은행들도 시스템의 성능과 운영 면에서의 우수성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우 대표가 개발한 바젤Ⅱ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은 국내에서 개발되는 어떠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와도 호환이나 이식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직접 개발 및 응용할 수 있으며 비용적인 측면이나 유지 보수 차원에서도 외국 제품과 뚜렷한 비교 우위를 갖추고 있다.

“외국 제품들은 그들만의 포맷과 룰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 제품이 요구하는 형태로 원천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제해야만 하고, 별도의 리스크 데이터마트(RDM)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때 별도의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고, 유지 보수와 관리에 따른 비용도 막대합니다.”

이들 외국 제품은 우 대표의 바젤Ⅱ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에 비해 가격도 서너 배 이상이다. 페르마의 경우 국내 은행이 도입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패키지 가격이 20억~30억원에 이른다. 반면 SAS는 공급 조건으로 연간 5억원의 유지 보수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금융권과 SI업계에서는 신 BIS 협약에 따른 시스템 교체 시장의 정확한 규모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제 1금융권의 경우 지난 2004년부터 바젤Ⅱ 도입에 따른 준비가 현재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지만 수정 보완에 따른 추가 비용이 어느 정도가 될 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제 2금융권의 경우 올해 진행될 차세대 프로젝트 규모만도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 대표는 이미 바젤Ⅱ 준비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제 1금융권보다는 아직 준비 초기 단계인 제 2금융권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투자비용이 제 1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돼 외국 제품에 비해 가격 대비 경쟁력을 부각시킬 예정입니다. 또 제 1금융권에도 기업이나 개인 심사가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는 등 기존 제품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툴(Tool)을 통해 점유율을 높여갈 계획입니다.”

우 대표의 회사 상호인 ‘마이아(MAIA)’는 로마신화에서 ‘봄의 여신’을 가리킨다. 12년 전 서울 영등포의 한 컴퓨터학원 구석을 임대해 컴퓨터 조립회사로 출발했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좌절한 후 은행 등 금융권의 솔루션 개발과 DW(Data Warehousing)/CRM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제품 개발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던 우 대표의 간단치 않았던 지난 삶과 ‘바젤Ⅱ 위험가중자산 산출 엔진’으로 꿈꾸는 새로운 희망이 ‘봄의 여신’이란 상호에서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코노미플러스> 2007년 03월호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