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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건전 경영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



‘황우석’은 이제 개인 이름이라기보다 사건명이 됐다. 지금도 황우석 교수에게 연구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애국적(?)인 시민 모임이 있으니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황교수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던 거짓과 조작이 스며든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니 참담할 뿐이다. 황우석 때문에 한국인은 몇 년 사이에 수준 높은 생물학을 본의 아니게 모두 공부했다. 한 때는 호기심으로 한 때는 환상으로 한 때는 절망으로 연속 드라마를 구경하듯 한국인은 울며불며 했다.

분야가 분야인 만큼 거짓도 첨단화· 고도화 됐다. 거짓의 세계화도 겪었다. 온 국민이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을 왔다갔다했다. 국제적 명성이라지만 생소했던 새튼 교수도 알게 됐다. 제일 딱한 일은 뭐니뭐니해도 과학적 업적의 진실 여부를 떠나 한국인들 모두가 앞뒤 안 가리고 떼지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들쥐떼 근성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드러낸 일이다.

거짓에다가 애국심(?)이 뒤범벅된 황우석 사건

진실을 보도하려는 TV언론은 노도와 같은 촛불시위 앞에 무력했다. 광고주는 광고를 내렸다. TV방송사는 문 닫을 경영위기를 겪었다. 흡사 김일성 사후 북한인들의 오열과 같은 집단광란증 같았다. 미국 부시 대통령과 미국인들도 자기들 고통인 `9·11테러'에는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애국심(?)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직은 전쟁명분인 대량살상무기를 발견치 못했거니와 독재자 후세인도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이 드러났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필자의 모교인 고등학교의 교훈이다. 어찌 보면 참 고지식한 교훈이다. 핑핑 돌아가는 시대, 이러한 현대를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지혜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선배인 C 대학 명예교수가 필자에게 모교 교훈에 대해 농담어린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 기억난다. 깨끗하라고 해서 적당히 삥땅도 못 쳐서 가난하다. 부지런하자고 해서 삽살개처럼 뛰어 다녔지만 한탕 크게 먹을 눈이 부족해졌다. 그리고 책임지키자니 억울하게 덤테기 쓰기 일쑤여서 영 손해가 막급하다는 것이다.
 
또 뻔뻔스러움이 없어서 두목은 거의 없고 맨 참모들뿐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냉철을 필자는 지켰다. 만약 한국 국민 모두가 필자의 모교 교훈을 지켰더라면 외환위기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식회계로 치고받는 재벌총수오너 형제들
 
깨끗하자. 외환위기 이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투명성`이었다. 외국인들이 한국기업의 장부나 자료를 믿지 못한다는 불평이 극심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심지어 자기회사의 장부조차 믿지 못하는 재벌이 존재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들릴 정도다.

얼마 전 신촌 세브란스 심장혈관 병동으로 친구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오너 대신 분식회계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며 ‘가슴을 졸인’ 결과 심장 수술을 받았다. 슬픈 일은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며 적당한 부패와 거짓을 두둔하는 세력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부지런하자. 있는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근면은 부유의 어머니다. 88올림픽 이후 우리는 극도로 건방져졌다. 3D업종이 너무 빨랐다.
 
책임 지키자. 책임 경영이 화두가 된 요즘이지만 정말로 책임지는 꼴 한번 보기 힘들다. 감옥에 가는 높으신 분들의 매양 같은 소리는 `보복이고 재수가 나빠서`이다. 그것도 툭하면 특별사면이라 해서 흐지부지된다.

외환위기 후 D 재벌 총수의 책임을 물어 퇴진 논란이 있을 때 일이다. 그 재벌총수가 책임질 경우는 정·재계의 고위인사 상당수가 줄줄이 성할 수 없다는 협박을 대변했던 중요경제단체 간부가 존재하는 나라다. 이 판에 필자는 온 나라를 향해 모교의 교훈을 고래고래 외치고 싶었다.
 
건전한 경영이란 기기묘묘한 고등수학이 아니다. 누구나가 납득하는 평범하고 심플(Simple)한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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